인천 열등생이 세계적 교육자로… “결국 된다,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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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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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인천 부평에서 태어난 소년 김홍석은 학교가 싫었다. 매일같이 이유도 모른 채 매를 맞았고 혼이 났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안 맞는 친구들의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촌지를 갖다 바치고 있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을 결심했고,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대학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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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교는 한국 학교와는 180도 달랐다. 첫 학기에 실수로 듣게 된 음악 수업에서 5장짜리 감상문을 써가야 했는데, 영어가 서툴렀던 그는 ‘This is good music’이라고만 쓴 리포트를 제출했다
교수는 자초지종을 물었고, 한국어로 감상문을 다시 써오라고 했다. 그는 한국어로 쓴 감상문을 들고 교수를 찾아가 사전을 이용해 감상문에 쓴 단어 하나하나를 설명했다.
교수는 A 학점을 줬다. 이 수업은 음악 수업이지, 영어 수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한국에서 ‘양’ ‘가’만 받았던 그가 받은 최초의 ‘A’였다.
이 소년은 미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이자 최고기술경영자(CTO)인 폴 김 교수다. 한국 교육에 환멸을 느껴 미국으로 떠났던 그는 세계적 권위를 가진 교육공학자가 됐다.
그가 하는 일은 혁신적인 교육 시스템을 개발해 세계 교육 현장에 도입하는 것. 2009년에는 비영리 국제교육재단인 ‘시즈 오브 임파워먼트(Seeds of Empowerment)’를 설립, ‘국경 없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최근엔 자신의 파일럿 도전기를 책 ‘다시, 배우다 RE:LEARN’으로 펴냈다. 2018년 어느 날, 캐나다 출신 석사과정 학생 루빈과 아프리카 교육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의 가슴이 요동쳤다.
파일럿 자격증이 있는 루빈이 ‘마음 맞는 파일럿들과 함께 세상 곳곳에 필요한 것들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자동차로 며칠을 가야 할 길을 비행기로 몇 시간 만에 갈 수 있다면,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자주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벨상 수상자와 밥을 먹을 때보다, 200억달러짜리 연구 프로젝트에 펀딩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유네스코 초청으로 연설했을 때보다 훨씬 큰 설렘을 느꼈다. 바로 비행학교를 알아봤고, 경비행기 조종 과정에 입문해 2020년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난달 모국에 온 폴 김 교수를 만났다
“(교육 봉사를 위해) 오지를 자주 가는데, 사실 이게 쉽지 않다. 멀기도 하고, 길이 없는 곳도 있으니까. 그런 곳을 내가 경비행기를 몰 수 있으면 좀 더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전했다.”
시력도 안 좋았고, 수업도 어려웠고, 낙방도 여러 번 했다. 그래도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에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많은 이들이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해’ ‘너무 나이가 많은 건 아닐까’
등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꿈을 포기한다. 그런데 꿈이 있다면 이루면 된다. 꿈을 버리거나 마음에만 간직하면 불행해진다. 파일럿 교육을 받으면서 교육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끝없이 배우는 학생의 자세로 살아야 더 나은 교육자가 된다는 것도 배웠다.”
여러 교관을 만났다. 첫 교관은 23세 대학생이었는데 계속 ‘잘한다’며 긍정적 피드백을 줬다. 기분은 좋았지만 세밀한 부분에서 놓치는 것이 많았다. 두 번째 교관은 ‘You just failed!’를 외치며 부정적 피드백만 줬다. 자신감이 사라졌고 훈련은 늘 두려움으로 시작됐다
세 번째 교관은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 분이었다. 내가 실수한 부분, 더 신경 써야 될 부분을 정리해 설명해줬다. 네 번째 교관은 예순을 넘긴 베테랑이었다. 경험이 많다 보니 상황마다 능력을 증진하는 방법을 들려주셨다. 이분이 주는 모든 피드백은 상당히 정교했다. 세 번째, 네 번째 교관은 ‘티칭’이 아닌 ‘코칭’을 해주는 분이었다.”
“티칭은 일방향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코칭은 ‘어떻게 하면 학생을 더 잘 이해할까’에 초점을 둔다.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각각의 학생이 가진 유니크한 재능, 역량을 끌어내고 도와주는 게 코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