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뒤엔 통일신라 석조불상이…반갑다,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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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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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내가 전면개방된 10일 오후 관저 위쪽의 작은 정자 안에 봉안된 통일신라 석조불상을 친견하러 온 불자들이 불상 앞에서 합장하며 인사하고 있다. 이 불상은 원래 경주에 있다가 1913년 조선 초대총독 테라우치가 수중에 넣어 경성(서울) 왜성대의 옛 총독부 관저로 가져왔고 1939년 지금의 청와대 관저가 건립될 때 함께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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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굴암 큰 불상을 닮았다고? 실제로 보니 훨씬 순박한 얼굴의 돌부처상이었다.
청와대가 전면 개방된 10일 관저 뒤쪽의 백악산 기슭 정자에 30년 이상 앉아있는 신라 불상을 처음 만났다. 그 불상은 서울 남산 아래 도심 거리에 온통 눈길을 쏟고 있었다
부처의 눈 아래로 멀리 관악산의 화기 넘치는 산세를 배경으로 야트막한 남산과 세종로·태평로 도심 거리와 빌딩 숲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경복궁 광화문과 흥례문, 근정전 전각이 하나의 직선 축으로 연속되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그 풍경을 부처상 바로 밑 지점에서 갈무리하는 정점이 바로 청와대 관저의 넓고 푸른 지붕이었다. 과연 청와대 이름에 걸맞은 푸른 기와의 집이었다.
청와대 정문이 활짝 열린 10일 낮 본관 건물을 지나 경내 북동쪽에 자리한 관저 위쪽으로 올라갔다. 백악산 기슭 작은 정자에 봉안된 통일신라 석조불상을 우선 친견하는 길이다. 관객들이 불상 앞에서 합장하며 인사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최고 권부의 위쪽에 통일신라 불상이 있어 신기하고 신비스럽다”는 반응이다. 60~70도의 가파른 경사길이 서너번 굽이치는 코스라 숨이 찰 정도로 힘들었다.
이 불상은 원래 경주에 있다가 1913년 초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가 수중에 넣어 경성(서울) 왜성대의 옛 총독부 관저로 가져왔고 1939년 경무대(청와대) 관저가 건립될 때 다시 옮겨진 뒤 80년대 말 지금 전각 자리에 안치됐다
9세기께의 이 불상은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인 살진 얼굴과 양쪽의 눈사위를 약간 추켜올린 것이 특징적인데, 학계에선 ‘미남불'로 부르는 이도 있으나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다.
높이 108㎝, 어깨너비 54.5㎝로 당당하면서 위압적이지 않은 풍모다. 불상 전각을 보러 올라가는 길 어귀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썼다는 정자 ‘오운정’의 교교한 편액 글씨가 눈길을 붙잡는다.
내려온 관저 부근 암벽에는 ‘天下第一福地(천하제일복지)’라는 새김글씨가 남아있어 이곳 일대가 풍수적인 명당이나 길지로 여겨졌음을 일러주었다.
청와대 문화유산 답사길은 관저 아래에서 서남 방향의 본관 쪽과 동남 방향의 춘추관 쪽으로 갈린다. 먼저 본관으로 가는 통로 사이에 봉긋한 언덕이 있다.
1939년 지어져 54년 만인 1993년 헐린 옛 청와대 관저(조선총독 관저)가 있던 자리다. 원래는 조선 말기 경복궁 북문 신무문을 지키던 병사들의 거처인 수궁이 있었다.
철거 뒤 헐어낸 자리에 흙을 두툼하게 덮어 언덕처럼 만들고 옛 관저의 마지막 잔해인 지붕 위 꼭지 장식인 절병통을 그 위에 놓았다
이 절병통은 청와대 경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근대 건축물 흔적이다. 추정 나이 740살로 청와대 안 자연유산 중 최고 어른 격인 수궁터 주목도 살갑게 다가왔다.
춘추관 방향으로 내려가면 길 왼편에 1920년대 지은 한옥 건물로 추정할 뿐 구체적인 건립 내력을 모르는 침류정이 있다. 좀 더 내려가면 오른쪽에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공간이라는 녹지원과 1983년 청와대 최초로 지은 한옥 영빈관 상춘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