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다운 취향은? /조갑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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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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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생전에 고향 마당의 꽃밭은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나리 동백 수국 등 키가 큰 녀석들이 자라는 곳은 어머니 꽃밭이었고 은방울 매발톱 깽깽이풀처럼 키가 작은 초본류들은 필자의 구역에서 자랐다. 어머니와 필자의 취미는 꽃 키우기였지만 좋아하는 꽃의 종류는 달랐다. 삶을 통해 만들어진 나다움 정서 미학이라고나 할까, 취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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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곽재구는 ‘사월이면 등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며 첼로 음악을 듣는다’고 노래했다. 봄이면 나는 소리꾼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를 즐겨 듣는다. 영화 ‘워낭소리’
중 소달구지에 앉아 졸고 있는 할아버지 곁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 적어도 나에게 장사익의 소리는 첼리스트 요요마의 연주만큼이나 감동적이다
간혹 취향의 우열을 말하기도 하는데 멋있어 보이는 취향이 있을지언정 하찮은 취향은 없다. 특급호텔 뷔페를 즐기는 사람이 시골 장터국밥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게 아니듯 취향은 입맛과도 같아서 결코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부류의 취향이든 독특하고 희소성이 있는,
재미있는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분명 밋밋하지 않은 기(氣)찬 사람일 것이다. 대중가요를 불렀다고 국립오페라단에서 제명당했던 성악가,
에스프레소보다 녹차라떼를 고집하고 히트곡 명단에는 올라보지도 못한 철 지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들은 내면의 취향을 생생하게 살려낸 진정한 삶의 프로들이다.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세상은 지루하지 않고 더 흥미진진해진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은 거의 후천적 경험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취향(趣向)은 나에게 다가온 수많은 끌림 들 속에서 내가 취(趣)한 것들이 모여 어떤 방향(向)을 이룬 것이다
우린 한창 호기심으로 충만했던 학창 시절에 정답이 중요했기에 넓은 세상을 마음껏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었고, 삶에서 취향이 생겨날 틈은 더더욱 없었다.
마음껏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었고, 삶에서 취향이 생겨날 틈은 더더욱 없었다. 그저 즐기면 되는 음악, 미술도 재미와는 거리가 먼 성과 중심의 평가가 이루어져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적이 낮으면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세상에 나와서는 얕은 지식을 취향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이제 자신에게 눈길을 돌리자
우연히 만난 끌림에 대하여 흥미를 놓치지 말고, 그 대상을 배우고 즐기는 의도적 경험을 지속해보자.
물론 부지런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어느 날 그게 취미가 되어 삶은 깊어지고 취향으로 이어져 자신을 이끌 것이다.
삶을 취향의 문제로 보면 타인은 비교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삶에 설렘과 아이디어를 안겨주는 영감(靈感)의 원천이다
남의 집 프로젝트’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집에 모여 타인의 안목을 배우고, 같은 취향과 호기심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작가 김정운의 여수 바닷가 미역창고(美力創考) 체험을 꿈꾼다. ‘김정운다움’의 산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
름 화가’의 상상력과 그의 글을 좋아하는 필자의 감성이 합쳐진 반짝거림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읽고 이런 구절에 밑줄을 긋고 이런 메모를 하고 이런 그림을 즐겨 그리는구나!’ 타인의 취향(趣向)은 나에게 있어 취향(趣香)이다. 신나는 일이다.
자세히 오래 보아야 예쁜 제비꽃에 마음이 끌려 언젠가 씨를 뿌렸더니 지금 고향 집 마당에는 보라색 흰색이 지천(至賤)으로 피었다.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가겠지
시인의 ‘제비꽃은 장미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적어 제비꽃 곁에 꽂았다. ‘나답게 살자’는 다짐이다. 나다운 건 수준의 문제가 아니고 취향의 영역이다
조팝나무, 섬진강 100리 길, 국산 와인 등도 요즈음 나의 소소한 취향이다. 삶의 프로들은 자기 취향에 대한 가치와 감동을 발견할 줄 알기에 생동감이 넘친다.
가장 ‘나다운’ 취향 3개를 들추어 보자. 바로 튀어나오는가? 혹시 없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삶의 미세한 결 속에 숨어 있는 취향을 꼭 한 번 찾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