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맛 좋은 금강서 '4대 90년' 탁주 명가... 복합문화공간 제2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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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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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충북 옥천 이원양조장
증조부, 1930년 금강변에 술도가
부친 장인 정신에 가업 승계 결심
근대식 주조장 모습 전통술 체험
옛 추억 음미하려는 발길 이어져
100% 우리 밀로 빚은 '향수' 일품
숙박형 막걸리 타운 건립도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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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술의 대명사 막걸리. 지역마다 맛도 천차만별이다. 같은 재료를 써도 날씨나 빚는 사람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다양하고 제각각인, 술맛의 오묘함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건 무엇일까
대부분의 전문가는 ‘물맛'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물맛 좋기로 소문난 곳에 술도가가 선다’는 옛말이 괜한 얘기가 아니다. 물 맑은 금강을 끼고 앉은 충북 옥천 이원양조장은 이런 점에서 천혜의
조건을 갖춘 술도가다. 질 좋은 곡물과 온화한 기후까지. 이원양조장이 4대에 걸쳐 90년 넘게 고유의 술맛을 이어 가고 있는 비결이다.
따가운 햇볕이 쏟아진 지난 1일. 옥천군 이원면 강청리에 자리한 이원양조장에 들어서자 막걸리 특유의 시큼한 향이 코를 찔렀다. 발효실에서 밑술의 기포가 올라오며 풍기는 냄새였다. 양조장
구석구석엔 대형 옹기 항아리들이 널려 있었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려고 마당 중간에 우물을 파 놓았는데, 우물둔덕도 항아리다. 겉에 쓰인 ‘410L, 74.7’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강현준(51
대표는 “1974년 7월 세무서에서 나와 항아리 용량이 정확한지 검정을 한 표식”이라며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옛 항아리를 그대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양조장의 역사는 이 항아리 검정일보다 40년 이상 더 거슬러 올라간다. 양조장은 강 대표의 증조부인 강재선씨가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세웠다. 좋은 물을 얻기 위해 증조부는 금강변의
이원면 대흥리에 터를 잡았다. 이를 강 대표 조부인 강문회씨가 이어 받았다. 금강에서 홍수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강 대표 부친 강영철씨가 1949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건물은 증조부가 세웠던 원형을 그대로 옮겨와 복원했다.
1970년대까지 이원양조장은 근방에서 제일 유명한 술도가였다. 양조장에서 일하는 직원만 30명에, 하루 막걸리 판매량만 3,000병에 달했을 정도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탁주 공급 지역 제
한이 풀리면서 지역 양조장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그 파고를 이원양조장도 피하지 못했다. 경영 악화로 강 대표 부친 홀로 주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고교 졸업 후 옥천을 떠나 서울에서 건
강 대표가 팔자에도 없는 양조장을 물려받게 된 건 2013년이었다. 어머니 병환 때문에 고향에 내려왔다가, 위기에 처한 양조장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마침 양조장 위생 점검을 나온 공무원
으로부터 “시설이 비위생적이다” “당장 개선하지 않으면 면허를 반납하라”는 질책을 듣는 부친 모습까지 지켜보게 됐다. 강 대표는 “당시 저는 내심 아버지가 양조장을 그만두시길 원했습니
다"라며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우리집 탁주를 찾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문을 닫냐’고 버티셨고, 평생 양조장을 일군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부친의 확고한 장인 정신에 “수십 년 가업으로 해 오던 일을 내 대에서 끊을 수는 없다”는 결기까지 합쳐지면서 강 대표는 가업을 잇기로 결심을 했다. 건축업을 잠시 중단하고 노후한 양조 시설
을 위생 기준에 맞게 보수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1년 6개월 동안 서울 집과 양조장을 오가며 쇠약해진 아버지로부터 막걸리 빚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식품연구원 등 전문 기관의 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