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어떤 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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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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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63개 전국청년단체 소속 청년들이 지난달 1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스피씨(SPC)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뜨에서 벌어지는 노조탄압과 노동착취를 규탄하며 에스피씨그룹 불매운동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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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빵을 굽는다. 인문학 연구라는 게 원래 ‘정답'을 증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보니 평소 취미로는 숫자로 딱 떨어지는 것들을 좋아한다.
홈베이킹도 그중 하나다. 글을 쓰다 막힐 때, 전자저울 위에 밀가루 250g과 오일 80g, 베이킹파우더 4g을 재어 넣으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차분해진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도 푹푹 찌는 이 염천에 굳이 오븐을 돌리는 건 꼭 마음의 평화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불행히도 우리 집 근처에 빵집이 파리바게뜨뿐이다.
지난주 파리바게뜨 노조가 다시 집단단식에 돌입했다. 53일간 이어졌던 임종린 지회장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단식 종료와 동시에 약속됐던 교섭이 멈춰버린 탓이다
“단식 기간이 53일로 부족하면 60일이고, 70일이고 단식을 진행하겠다.” 그래서 나의 어설픈 제빵도 봄을 넘어 여름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63개 청년단체가 제빵업체 에스피씨(SPC)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며 불매운동 동참을 결의했다.
청년 제빵기사들의 현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나’의 고통을 소비하길 거부한 이들은, 80%가 여성인 제빵기사들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고용불안정이 노동자로 살아갈 동시대 청년들의 문제임과 동시에 젠더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여성 제빵기사들의 높은 자연유산율에 주목하며 여성 노동자의 모성권과 건강권 침해를 중요한 비판 지점 중 하나로 삼은 목소리는
오랫동안 남성의 모습으로 상상이 돼온 ‘청년 노동자’의 자리에 여성의 몸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구조적 성차별의 경험을 공유하는 많은 여성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냈다.
비슷한 시기, 다른 한쪽에서는 정반대 소식이 전해졌다. 불매운동 지지 대자보가 붙은 대학 캠퍼스 중 한곳, 연세대학교에서 학생 3명이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집회가 학습권을 침해한다며 청소 노동자들을 고소하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들은 노조의 집회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미래의 정신적 트라우마’ 등 본인들이 입은 ‘피해’의 값으로 총 638만6000원을 청구했다. 고소 학생들의 글이 공유된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댓글로 갑론을박이 치열한 가운데 공통으로 발견되는 쟁점이 있다.
피해의 측량이다. 집회로 인해 누가 피해를 보았는가. 그 피해의 정도는 어떠한가. 용인할 수 있는 피해의 정도는 어디까지인가. 댓글 두세개마다 하나씩, 마치 저울에 달듯 피해를 가늠해 판단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의견들이 눈에 띈다. 문제가 있다. 내 취미들과 달리, 현실의 숫자놀음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려는 노력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그것은 그들의 투쟁이 그들에게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고통을 전가하고 이를 묵인함으로써 유지되어온 평화를 파열시키며 시작되기 때문이다
5분 거리마다 하나씩 있는 매장에서 저렴하게 사 먹는 맛있는 빵, 수만명의 학생이 사용하고 있지만 매일 깨끗한 모습 그대로인 학교,
엠제트(MZ)세대의 아이콘이라는 포켓몬빵을 기꺼이 거부한 청년들이 자신의 ‘피해’가 아닌 구조의 ‘폐해’에 주목하는 것은 계산이 아둔하거나, 일상 속 불편에 무감해서가 아니라 차별과 불평등의 촘촘한 연쇄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음을 아는 까닭이다